인공지능의 뿌리, 그리고 암호해독 이야기! 오늘은 천재 과학자 튜링은 왜 기계로 인간의 사고를 흉내 내려 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어느 날 이런 질문을 떠올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공지능(AI)의 시대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 비서가 말도 걸고, 로봇이 자율주행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며,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작곡합니다. 하지만 이런 미래적인 기술의 출발점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종이와 연필로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던 한 과학자의 머릿속에서 시작되었죠.
그가 바로 앨런 튜링(Alan Turing)입니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튜링은, 단순히 전쟁을 이기기 위한 암호 해독 기계를 만든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기계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결국 인공지능의 뿌리가 되는 ‘생각하는 기계’의 개념을 세상에 처음 제시한 인물이었죠.
이 글에서는 튜링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시대적 배경과 고민 속에서 ‘기계 지능’이라는 개념을 탄생시켰는지, 그리고 그가 오늘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전쟁 속에서 ‘기계’를 만든 사람
튜링이 가장 유명해진 이유는 다름 아닌 암호 해독 때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에니그마(Enigma)’라는 복잡한 암호 기계를 사용해 군사 통신을 주고받았습니다. 이 암호는 하루에 수백 조 개 이상의 조합이 가능했고, 해독하는 데 수백만 년이 걸릴 수 있는 난공불락의 벽처럼 여겨졌죠.
하지만 그 벽을 무너뜨린 사람이 바로 앨런 튜링입니다.
튜링은 수학과 논리학, 그리고 기계적인 계산의 원리를 이용해, 에니그마를 빠르게 해독할 수 있는 전기 기계 ‘봄브(Bombe)’를 설계합니다. 이 장치는 인간의 손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속도로 가능한 암호 조합을 계산하며 독일의 메시지를 해독했습니다.
그 결과, 연합군은 독일의 군사 전략을 미리 파악할 수 있었고, 전쟁을 2~4년 단축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한 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튜링은 단순히 “암호를 푸는 기계”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기계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면, 생각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최초의 상상
암호 해독 이후에도 튜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 역사적인 논문을 발표합니다. 제목은 바로,
“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
(계산 기계와 지능)
이 논문에서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곧 이렇게 말하죠.
“이 질문은 너무 모호하다. 그 대신 게임을 하나 해보자.”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유명한 ‘튜링 테스트(Turing Test)’입니다.
튜링 테스트는 간단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됩니다. 한 사람이 컴퓨터와 또 다른 사람을 각각 채팅으로 대화하며 구분하려 합니다. 만약 그가 컴퓨터와 인간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그 컴퓨터는 ‘생각한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튜링은 “언젠가는 컴퓨터가 사람과의 대화에서 완벽하게 속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 일부 AI 챗봇은 부분적으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평가도 받았어요.
이 아이디어는 그 당시에는 매우 급진적이었습니다. ‘기계가 생각한다’는 발상 자체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었거든요. 하지만 튜링은 인간의 뇌도 결국은 전기적 신호로 작동하는 하나의 계산 시스템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생각은 이후 인공지능, 머신러닝, 컴퓨터 과학의 기초가 되었고, 오늘날의 AI 기술은 튜링의 사유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튜링의 비극과 오늘날의 의미
튜링은 천재였지만, 시대는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는 동성애자였고, 당시 영국에서는 불법으로 간주되었죠. 1952년, 그는 법정에 서게 되었고, 화학적 거세 처분을 받습니다. 연구도 이어가기 어려웠고, 결국 2년 뒤인 1954년, 그는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사인은 청산가리를 넣은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남긴 이 말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의 가슴에 남습니다.
“사람들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지 묻지만, 나는 사람만이 생각할 수 있다고 누가 정했는지 묻고 싶다.”
그의 죽음 이후, 과학계는 오랜 침묵 속에서 그의 업적을 다시 조명했습니다. 2009년, 영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튜링에게 사과했고, 2013년에는 왕실의 사면이 이루어졌습니다.
2014년에는 그의 삶을 다룬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이 개봉되었고, 세계적으로 그의 업적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2021년부터, 영국의 50파운드 지폐에는 앨런 튜링의 얼굴이 새겨졌습니다. 그야말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과학자이자 철학자로 인정받은 셈이죠.
기계와 인간의 경계에서
튜링이 기계로 인간의 사고를 흉내 내려 한 이유는 단순히 기술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사고, 지능, 자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을 통해 기계도 사고할 수 있을지를 탐구한 것입니다. 이는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AI, 자율주행, 음성 인식, 번역기 등 모든 인공지능 기술의 뿌리는 튜링의 사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상상했던 ‘생각하는 기계’는 이제 현실이 되어, 인간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기술 그 자체보다도 그 기술을 만든 사람의 고민과 철학입니다. 튜링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동시에 인간이 왜 생각하는 존재인지, 기계와 인간의 경계는 어디인지를 탐구했습니다.
다음에 AI 기술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면, 그 시작에 선 튜링을 떠올려보세요. 그는 암호를 푼 사람이 아니라, 사유의 경계를 확장시킨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