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과학 사이에서의 고민! 오늘은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는 왜 말년에야 책을 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던 시대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해와 별과 행성들이 모두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는 세상.
지금은 어리게만 들리는 이 생각이, 수천 년 동안 진리로 받아들여졌던 믿음이었다는 사실, 놀랍지 않나요?
그 시절 사람들은 하늘을 보면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별들도 밤새 하늘을 돌고 있으니 당연히 지구가 중심이고 나머지가 도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을 정리한 사람이 바로 프톨레마이오스, 그는 이론적으로도 '천동설'이라는 체계를 만들었죠.
그런데 15세기 말, 이 오래된 믿음을 뒤집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의 이름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그는 지구가 도는 것이라고 말했어요.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인다고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이 생각을 40년 가까이 숨겼고, 그것을 책으로 펴낸 것은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는 그렇게 위대한 생각을 세상에 빨리 알리지 않았을까요?
이 글에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 볼 거예요.
코페르니쿠스는 누구였을까?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1473년, 폴란드의 토룬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어려서 부모를 잃었지만, 삼촌의 도움을 받아 천문학, 수학, 의학, 법률, 신학까지 아주 폭넓은 공부를 할 수 있었죠.
그리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라틴어, 그리스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등 여러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학자이자 성직자였어요.
그는 학문적으로도 뛰어났지만, 기본적으로 성직자였기 때문에 교회와 깊은 관련을 맺고 살아야 했습니다. 교회는 당시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권력이었고, 학문과 사상도 종교의 틀 안에서만 허용되던 시대였죠.
코페르니쿠스는 1500년대 초부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생각, 즉 지동설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밤하늘을 관찰하고, 수학적 계산을 하며, 천동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행성의 움직임들을 고민했어요.
그러다 결국,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그 주위를 도는 것이 훨씬 간단하고 정확한 모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그 내용을 담은 책,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를 출판하지 않고, 필사본으로 일부 사람들과만 공유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진리를 말하면 벌을 받는 시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생각했을 당시, 사람들은 하늘과 우주에 대한 믿음을 성경과 연결해서 해석하곤 했습니다.
성경에는 “태양이 멈췄다”거나 “지구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했고, 그러니 태양이 움직이고 지구는 가만히 있는 것이 ‘신의 뜻’이라 생각했죠.
따라서 누군가 "사실은 지구가 움직이고, 태양이 중심이야!"라고 말하면,
단순한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던 겁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단지 과학자이기 전에 종교인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자신이 발견한 이론이 진리라고 믿었지만, 동시에 그 진리를 말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어요.
더군다나 당시 종교재판이 아주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대였고, 이단으로 몰리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과학의 발전을 원했지만, 동시에 사람들과의 충돌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책을 출판하지 않은 채 조용히 연구만 했던 거죠.
왜 하필 죽기 직전에 책을 냈을까?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코페르니쿠스가 죽기 직전, 1543년에 처음 출간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가 책의 인쇄본을 받아보자마자 숨을 거두었다고도 해요. 왜 하필 그때였을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코페르니쿠스는 이미 노인이었고, 더 이상 자신이 받을 비난이나 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었어요. 그는 자신의 이론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고, 후세 학자들을 위해 기록을 남기려 했습니다.
둘째, 그를 설득한 젊은 제자가 있었어요. 게오르크 요아힘 레티쿠스(Rheticus)라는 수학자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고, 그의 작업을 돕고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섰습니다. 레티쿠스가 적극적으로 출판을 준비했고, 결국 그 열정이 코페르니쿠스를 움직였던 거죠.
출판된 책에는 재미있는 점이 하나 더 있어요. 책의 서문은 코페르니쿠스가 쓴 것이 아니라, 루터교 신학자인 안드레아스 오시아너더가 썼고, 거기엔 "이건 진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단지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한 가상의 이론"이라고 적혀 있어요. 마치 “진심은 아니에요, 그냥 참고용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이건 당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막이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그 책이 큰 주목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진짜 내용을 깊이 본 과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이론은 과학혁명의 시발점이 되죠.
조용했던 외침이 만든 큰 물결
코페르니쿠스는 세상을 향해 크게 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용히 관찰하고, 계산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말년에 조심스럽게 책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 조용한 외침은 세상의 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긴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냈어요.
그의 이론은 이후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으로 이어졌고, 오늘날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리는 언젠가는 드러난다는 사실을 그의 삶이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 시대의 무게와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관찰과 이성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인류의 생각을 바꿔놓았죠.
오늘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가 처음으로 ‘지구가 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의 용기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